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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무일푼으로 자수성가한 김용두 대표 덧글 0 | 조회 4,028 | 2018-01-10 00:00:00
엔씨티  

[휴먼]무일푼으로 자수성가한 김용두 대표

미래 내다본 46년간 노력으로 버스 40여대 규모 관광회사 키워 “한결같은 친절서비스 … 이젠 고객들이 먼저 찾아주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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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2-11 14:08 | 신문게재 2016-02-1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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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스토리]무일푼으로 자수성가한 김용두 (주)한화우등관광 대표 

가난한 농부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무일푼 운전병에서 자수성가해 40여 대 관광버스를 운영하는 관광회사 대표로 성공한 대전관광버스업계의 산증인이 있다. 

김용두 (주)한화우등관광 대표(66)가 바로 그 화제의 주인공이다. 고객에 대한 한결같이 친절한 서비스는 물론 소속 회사 직원들에게도 가족같은 보살핌으로 덕을 쌓아 안팎으로 신망이 두터운 김용두 대표를 지난 2일 서구 정림동로에 위치한 (주)한화우등관광 회사 대표실에서 만나 자수성가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김 대표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자수성가하셨는데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셨는지 궁금합니다. 

▲예. 저는 세종시 조치원읍에서 1950년 가난한 농부의 7남매중 막내로 태어나 초등학교와 중학교 졸업후 열여섯살에 기술을 배우게 됐습니다. 집을 나와 남북화물에서 조수 생활을 거쳐 1969년 9월, 제 나이 스무살에 자동차 면허를 발급받고 운전기사를 하게 됐지요. 영장이 나오자 증평 52사단에 입대해 운전경력 5년 경력 덕에 갈마동 고개에 위치해 있던 대전 3관구 사령부에 차출돼 보안사령관의 운전병으로 복무하게 됐답니다. 군대생활에서 사령관으로부터 결단력과 추진력, 생활력과 인내심을 배울 수 있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껌이 귀하던 그 시절 큰 껌박스를 사가지고 면회왔던 아가씨와 결혼해 낳은 딸이 지금 대전의 모 여고 화학교사를 하고 있답니다. 딸은 공부를 참 잘해서 임용고시에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고 박사학위까지 받았지요. 제대 후 장모님이 주신 돈으로 조치원 평동 변두리에서 방한칸을 얻어 살림을 시작했습니다. 남북화물에 다시 취직해 큰 아이를 낳고, 큰 아이 네살때 결혼식을 올리게 됐습니다. 이때 대형 1종 면허를 발급받아 대륙관광버스회사에 취직했답니다. 그러던 어느날 신문에서 해외 건설 역군들 모집 공고를 보고 1983년에 광산 김씨 문중인 대우건설 김우중 회장과 큰 형님의 연결고리 인연으로 리비아 차드 국경 공항 활주로 공사에 참여하게 돼 리비아 사하라 황무지에서 근무하게 됐습니다. 사막 벌판이 뜨겁기는 왜 그렇게 뜨겁던지요. 1년반 동안 일하고 귀국해 번 돈을 종잣돈으로 삼아 공주 삼흥여객버스 한대를 사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 버스가 사고가 나는 바람에 살던 집까지 사고 처리비용으로 다 날리고 살길이 막막해 다시 대우건설을 통해 사우디아라비아로 갔습니다. 사우디에서 4년 6개월을 근무했죠. 사우디에서는 대형 화물차인 트레일러로 리비아 사하라 사막에 자재를 실어나르는 일을 했습니다. 건설 역군으로 안나가본 사람은 모를겁니다. 보통 인내심 갖고는 견디기 힘든 생활이거든요. 

귀국 후엔 조치원 사는 셋째 형님이 중학교때 친구였던 미호관광회사 대표를 소개해줘서 여기에 취직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동료의 모략으로 이 곳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답니다. 태평동 단칸방에서 처가살이 하던 시절인데 너무도 막막했죠. 그러던중 수덕관광에 다시 취직해 8년을 일하다가 여기서도 기사들의 모략으로 억울하게 다시 직장을 그만두게 됐습니다. 이후 충남방적 기사로 취직해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 6시까지 충남방적 직공들을 통근시키는 일을 하면서 기사들이 아침식사도 못하고 일한다고 사장에게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대기발령을 받게 됐죠. 그래서 사표를 던져버리고 나왔는데 어린 아이들을 보니 참으로 막막하더군요. 그러던 어느날 신문을 보니 동양할부 캐피털금융에서 3000만원 대출을 해준다는 문구가 딱 눈에 띈겁니다. 비록 이자는 어마어마하게 비쌌지만 작은 아버지가 보증을 서 줘서 돈을 대출받아 차를 사고 지입차 관광버스 기사를 시작하게 됐지요. 정말 파란만장한 시절이었네요. 

-김 대표님, 이 때부터 본격적인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하신 거지요? 

▲예. 관광버스 기사를 시작하면서 손님들을 모시고 가면 일일이 몸으로 서비스를 했습니다. 제 차를 타신 손님들께 최대한 친절한 서비스를 베풀고 성실하게 모시니까 손님들이 저를 찾아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손님들이 수고비를 주시면 손님들 식대와 관광지 입장료를 내드리고 최대한 정성껏 모셨습니다. 그러니까 점점 제 차를 찾는 손님들도 많아지고 수고비도 많이 주셔서 할부 3000만원을 갚고 셋방살이도 면하게 됐습니다. 1998년에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이 정림동 건물도 사게 됐지요. 대전에 관광회사가 36개가 있는데 밑바닥 조수생활부터 기사를 거쳐 오너가 된 관광회사 대표로는 제가 유일합니다. 제가 밑바닥에서부터 온갖 어려움과 궂은일을 다 겪으면서 일을 배워왔기 때문에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분야의 모든 경험을 해봐야 기술과 노하우를 알게 되는거죠. 

비록 세월호때와 메르스 사태때는 직격탄을 맞아 직원들의 처우 개선을 못해준게 매우 미안하지만 오는 3월이 지나면 직원들의 처우 개선을 해줄 생각입니다. 올해와 내년만 힘을 모아 잘 지내면 안정될 것으로 봅니다. 우리 직원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큰 사고 없이 관광버스 40여 대를 잘 움직여준다는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버스기사 채용을 매우 신중하게 하신다던데요. 

▲당연합니다. 기사 한명이 45명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오랜 경륜과 친절함을 갖춘 기사를 뽑습니다. 차 사고가 나면 오너가 민형사상 모든 책임을 져야 되니까 차가 움직이는 동안은 늘 살얼음판같은 불안함을 갖고 살죠. 제가 비록 중학교밖에 안나왔지만 기사들에게 책임 추궁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만한 경륜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너는 자동차 정비를 비롯해 차에 대한 모든 상식과 더불어 안전교육 등 뭐든지 다 할줄 알아야 됩니다. 오너가 잘 리드할줄 알아야하지요. 저는 직원들에게 당장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지 말고 늘 미래를 내다보라고 말해줍니다. 저는 묵묵히 소신있게 일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관광버스 기사가 돈을 버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손님이 불러주시면 됩니다. 손님이 불러주는 기사가 되려면 첫째가 안전운행이고, 둘째가 친절입니다. 기사가 최선을 다해 친절을 베풀면 손님들이 반드시 다시 찾아주십니다. 철저한 프로정신이 필요합니다. 

-용두산이란 별명이 있으시던데요. 

▲46년간 운전을 했던 저는 2014년 5월을 끝으로 운전기사생활은 그만뒀습니다. 저는 명함에 제사진을 넣고 다니면서 손님들에게 드렸는데요. 10년, 20년, 30년 된 단골손님들이 명함의 제 사진을 보고 다시 찾아주셨습니다. 지금도 '관광버스를 타려면 한화관광 용두산한테 가라'는 말이 회자되는데요. 제 이름 용두를 따서 별명이 용두산이 됐습니다.(하하하) 손님들을 태우고 전국을 누비면서 휴게소나 관광지에 가게 되면 간단하게 도로에 대한 설명과 지역 관광명소를 알려드리고 손님들이 늘 기분좋게 여행을 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짐을 들고 타시면 얼른 쫓아내려가 짐을 들어 자리에 갖다드리거나 트렁크에 넣어드리고, 손님과의 약속이 있으면 늘 15분 전이나 30분 전에 가서 먼저 차를 대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니까 손님들이 좋아하시고 저를 많이 찾아주셨지요. 손님들과 자주 대화를 나누면서 손님들과 술이면 술, 노래면 노래, 사교춤이면 사교춤, 바둑이면 바둑, 고스톱이면 고스톱 등 그때 그때 분위기를 적절히 맞춰드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손님들이 점점 제 주위에 많이 모이시더군요. 

제가 어리버리한 면이 있어요(하하하).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면을 사람들이 좋아해줍니다. 사업은 이렇게 하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약속을 잘 지키고 신의를 잃지 않은 덕분에 친구들이 주변에서 잘 도와줍니다. 그 덕분에 대전에서는 유일하게 직영차들을 40여대 운영하면서 제 건물과 제 차고지를 갖고 있는 유일한 관광버스 대표가 된거지요. 그래서 늘 손님들께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산답니다. 

-관광버스 기사를 하시면서 큰 보람을 느끼실때가 있다면서요. 

▲예. 경로당 어르신들을 모시고 관광을 다녀올때가 있는데요. 경로당 어르신들이 하루를 재미있게 잘 다녀오신후 저에게 인사를 하시면서 3000원이든 5000원이든 1만원이든 허리춤에서 고이 접어둔 돈을 꺼내주실 때입니다. 가슴이 저리게 고맙고 감동스런 순간이지요. 물론 새파랗게 젊은 승객이 운전기사라고 무시하면서 반말 찍찍 해대고 함부로 말할때는 너무나 서럽고 가슴이 아플때도 있었지요. 버스 안에서 음주와 음악 시비만 없으면 손님과 다툴 일이 없습니다. 버스 안에서 음주가무는 불법인데 손님들이 막무가내로 요구할때가 힘들었지요. 

이 관광버스 업계에서 최고의 오너가 되기까지 수많은 세월을 겪고 살아오면서 터득한 노하우와 영업방식들을 후배들에게 전수해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직원들이 나중에라도 무일푼에서 시작해 어려운 생활끝에 성공하기까지의 제 생활방식을 기억해주고 함께 성공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오너가 된 후에도 매일 새벽 4시면 일어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관광버스를 이용하는 승객들에게 아침식사를 해나르신다면서요. 

▲예. 한화관광은 24시간 전화를 받고 새벽 4시면 일어나 손님들께 불편을 안드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제 아내와 함께 제가 텃밭에서 가꾼 무공해 채소들을 이용해 아침식사 준비를 해서 그날 관광을 가시는 승객분들께 대접해드립니다. 모두 좋아하시니까 더 신이 나서 매일 새벽 음식을 퍼나릅니다. 손님 한분 한분을 소중하고 귀하게 모시려고 최선을 다하죠. 손님들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베풀고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가수원에 땅을 사서 텃밭을 가꾸고 있는데 여기에 원두막을 짓고 직원들의 쉼터로 조성하고 있습니다. 관광 비수기엔 직원들이 여기 와서 쉬고 가도록 하는거죠. 밭에 수박과 참외, 옥수수, 고구마, 감자, 땅콩, 가지, 오이, 고추, 콩, 들깨, 상추를 심고 직원들에게 따다 먹으라고 합니다. 지금은 기러기와 닭도 키우고 있답니다. 자급자족하는거죠. 

산악회를 이용하시는 분들께도 제가 농사 지은 친환경 농산물로 아침을 해드리니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릅니다. 기분좋게 드셔주시는 모습을 보면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끈끈한 정으로 사는 것, 그게 제 기쁨이자 보람이죠. 세상을 살때 너무 이것저것 따지고 살면 인간관계에서 골이 깊어지는 겁니다. 덕을 많이 쌓고 사는게 행복한 삶이지요. 가정 경제가 살아야 웃음꽃이 핍니다. 지금까지 정말 열심히 부지런히 근면하게 살아왔고 직원들도 일을 잘 해주고 있고, 손님들도 많이 찾아주시고, 그래서 저는 지금이 제일 행복하고 보람있습니다. 

-김 대표님, (주)한화우등관광에서 국내외 해외여행을 진행하시면서 다음카페에서 한화투어산악회를 운영하시는 회장님으로도 활동중이신데요. 한화투어산악회는 어떻게 운영하고 계신지요. 

▲예. 저희 (주)한화우등관광에서는 국내여행과 해외여행을 모시고 다니는데요. 제주도, 울릉도, 홍도 등 국내 관광지와 행사 차량전세를 비롯해 신혼여행을 모시고 다닙니다. 이외에 한화투어산악회는 매일 출발하는데요. 매주 관광지와 산행 정기운행으로 인기가 많습니다. 제가 계룡시와 가수원 밭에서 직접 기른 채소와 시레기로 제 아내가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어 매일 새벽 4시에 관광지와 산으로 떠나는 버스 승객분들에게 아침식사를 제공해드리고 있습니다. 또 술과 안주 등 뒷풀이 음식도 제공해드리기 때문에 인기도 많고 단골손님도 많지요. 

일정 관련 문의는 (주)한화우등관광(042-581-3371)으로 해주시면 친절히 안내해드린답니다. 매우 재미있겠지요? 많이 애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친절한 서비스로 모실게요. 

대담·정리=한성일 취재4부장(부국장)·사진=이성희 기자